유전 감독 아리에스터의 <미드소바>
공동체속 공감을 어떻게 느낄까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는 대낮에 비행기를 탄 줄 알았는데, 깨고 보니 잠수함 속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영화다.
전작 <유전>(Hereditary, 2017)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아리 에스터 감독은 공포라는 장르를 이용해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자신만의 장르에 싹을 틔운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얼핏 보면 이방인들이 겪는 단순한 집단 공동체에 관한 공포영화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공감이라는 정서를 바탕에 깐 지독한 멜로다.
주인공 대니는 가족 문제로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에게 평소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은 대니의 집착을 지긋지긋해 한다. 동생이 부모님을 죽이고 자살해 버린 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대니는 크리스티안에게 의존하지만, 그에겐 의무감만 남아 있다. 문화인류학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크리스티안은 스웨덴 출신 친구 펠레의 제안으로 친구 마크・조시와 함께 펠레가 살았던 마을 공동체(호르가)의 하지 축제를 탐방하기로 하고, 대니가 동행한다. 하얀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과 세상 평온한 자연 속에서 아픔도 갈등도 없어 보이던 마을은 기묘할 정도로 엄격한 규칙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니와 일행이 낯선 이방인이 돼 들어간 호르가 마을은 우리 기준에서 볼 때 다양한 악행이 율법이 돼 유지되는 곳이다. <미드소마>는 얼핏 낯선 풍습으로 유지되는 공동체 속에 스며든 이방인들이 폭력에 길들고, 어느 순간 자발적으로 동화돼 가는 과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니를 중심으로 보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인다는 마을의 풍속과 상대방의 정서에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는 전통은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결국 대니는 동행한 친구들이 달아나려 한 것과 달리 자신의 슬픔에 공감해 주는 유사 가족 같은 공동체의 정서에 동화된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크리스티안은 끝내 자신을 배신하지만 호르가 마을의 여인들은 그녀의 슬픔에 동화돼 한마음으로 통곡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감하지 못한 자에 대한 복수
아리 에스터 감독은 한 마을의 잔혹한 제의 속에 묶이고야 만 이방인들을 통해 활짝 펼쳐져 있지만, 감옥 같은 광야의 폐쇄성을 강조한다. 긴 상영 시간에 비해 공포의 밀도가 낮은 이야기는 그 속도가 무척 느리다. 잔혹하고 잔인한 공포를 원하는 관객에게 <미드소마>는 무척 불안정하고 어정쩡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하고, 유일하게 의지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대니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보면 <미드소마>는 변변치 못한 남자친구를 그제야 버리고 오롯이 독립하는 성장 멜로다.
사실 대니 일행이 초청받은 호르가 마을 축제는 9명의 제물을 고르기 위해 열리는 축제였다. 외부인 네 명과 마을 사람 네 명, 그리고 ‘5월의 여왕’이 선택한 한 사람이 마지막 제물이 된다. 5월의 여왕이 된 대니에게 크리스티안을 살릴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하지만 대니는 크리스티안의 죽음을 선택한다. 빼곡하게 쌓인 대니의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은 서늘하지만 그럴듯한 복수처럼 보인다. 결국 <미드소마>는 파경을 맞이한 한 여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 지독한 성장 멜로다. 회한의 감정에서 벗어난 대니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지막 미소는 그래서 처연하고 아프다.
p.s. <미드소마>는 상영 시간이 147분인 일반판과 171분에 달하는 감독판으로 각각 개봉됐다. 일반판은 미스터리 호러에 가깝다면, 대니 내면의 울렁임을 더 내밀하게 바라보는 감독판은 잔혹 멜로에 가깝다. 본 리뷰는 감독판을 중심으로 작성했다.
<미드소마>(Midsommar, 2019)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플로렌스 퓨(대니 역), 잭 레이너(크리스티안 역), 윌 폴터(마크 역), 윌리엄 잭슨 하퍼(조시 역), 빌헬름 브롬그렌(펠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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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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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서울 7월호 VOL.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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